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든 뱅크스 (문단 편집) === 클럽 경력 === 뱅크스는 석탄 광부 또는 벽돌공 등으로 일했는데, 어느 아마추어 경기에서 결원을 메우기 위해 대신 뛰게 되었다. 이 기회를 통해 그는 지역 팀에서 뛰게 되었으며 1955년에는 체스터필드에서 파트 타임 프로 선수로 계약을 맺게 되었다. 뱅크스는 팀은 FA 유스 컵 결승에 올랐는데 [[보비 찰튼]]이 군림하던 [[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]] 유스 팀에게 4-3으로 아깝게 패하고 말았다. 첫 시즌부터 대활약을 한 뱅크스는 바로 한 시즌만에 레스터 시티로 이적한다. 레스터시티에는 존 안데르손과 데이브 맥라렌이라는 이름있는 골키퍼들이 있었지만 뱅크스는 그들을 제치고 그 시즌에 바로 주전을 차지해버린다. 골키퍼가 첫 시즌에 주전으로 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. || [[파일:LBanks.jpg|width=100%]] || || 레스터 시티 시절의 뱅크스 || 그 이후부터 이적 전까지 계속해서 주전으로 뛴다. 그 다음 시즌인 1960-61 시즌에 레스터 시티를 [[FA컵(잉글랜드)|FA컵]] 결승까지 이끌었으나, 리그 챔피언이었던 [[토트넘 홋스퍼 FC]]에게 패배하면서 더블 우승을 헌납하고 말았다. 그 다다음시즌인 1962-63 시즌에도 다시 한번 FA컵 결승에 오르지만 이번엔 맨유에게 우승을 내주고 만다. 그러나 또 다음 시즌인 1963-64시즌에는 [[스토크 시티 FC]]를 상대로 1~2차전 합계 4-3으로 이기며 드디어 커리어 첫 우승컵을 획득했다. 그러나 다음시즌인 1964-65시즌에는 [[첼시 FC]]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을 했다. 레스터에서만 1번의 우승과 3번의 준우승을 한 그는 [[홍진호|폭풍저그]] 선수생활에 슬럼프가 올만했으나 그 해 월드컵 우승을 이끌어낸다! 그리고 뱅크스는 1966-67시즌에 [[스토크 시티 FC]]로 이적하게 된다. || [[파일:SBanks.jpg|width=100%]] || || 스토크 시티 시절의 뱅크스. 장갑 없는 손과 더러운 유니폼이 눈에 띈다. || 뱅크스는 잔부상이 꽤 있었지만 계속해서 주전을 차지했다. 30줄을 타기 시작한 뱅크스는 노련함이 묻어나는 안정적인 세이브로 전성기를 맞이한다. 그리고 대망의 1971-72시즌, 우승타이틀과는 거리가 멀 것 같던 뱅크스는 리그컵 결승에서 첼시를 2-1로 꺾으며 자신의 클럽 커리어의 마지막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본인은 그 시즌 [[FWA 올해의 선수]]에 선정되었다. 이렇게 승승장구했지만 1972년 10월 22일, 어깨 부상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운전하던 차량이 전복되는 교통사고로 오른쪽 눈을 잃어버리게 된다. || [[파일:BanksAccident.jpg|width=100%]] || || 눈 수술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뱅크스의 모습 || 얼굴을 '''200바늘''', 안와는 미세하게 100바늘을 꿰매야 할 정도의 중상이었기에 모두가 그의 축구 인생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했지만, 그는 스토크의 스카우터로 활동하며 축구에 대한 사랑을 이어갔고 급기야 1977년에는 거의 마흔 살의 나이에 [[미국]]으로 건너가 2년간 선수생활을 더 하게 된다. || [[파일:FLBanks.jpg|width=100%]] || || 미국 리그로 간 뱅크스 || 팬들은 이런 그에게 많은 찬사를 보냈으며 1978년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. 한쪽 눈은 잃어도 축구만은 포기할 수 없었나 보다. 눈을 하나 잃었으니 당연하겠지만 예전과 같은 기량은 보여주지 못했다. 근데 그런 상태에서도 북미 리그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으니, [[천재]]도 이런 천재가 없다. 그야말로 [[인간 승리]]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